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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피만 있는 개혁

얼떨결에 미국에 건너 온 지 벌써 꽉 차게 16년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뜻을 지닌 텍사스의 작은 도시 코퍼스 크리스티에서 6년 여, 그리고 내 생애 마지막 교회라고 생각하고 옮겨 온 찬양교회에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인생은 마치 두루마리 화장지와 같아서 뒤로 갈수록 빨리 없어진다고 한 말이 내게도 틀림 없어서 뉴저지에서의 10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지나 온 길을 더듬어 돌이켜 보니 적당히 무식한 목사를 믿고 여기까지 달려 온 교우들이 고맙기 짝이 없다. 무슨 은퇴사 같은 분위기로 흘렀지만, 나는 참으로 자랑스런 장로님들과 함께 교회를 섬겨 온, 복이 많은 목사이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이 잘 해 주셨음을 어찌 지나쳐 생각하랴. 나는 더러 “이렇게까지 잘 해 주실 거 없는데..”라는 생각을 했고, 그 때마다 아내는 불성실한 나를 나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 죄송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잘 해 주실 때는 고맙습니다 하면 되지만, 너무 잘해 주시면 죄송합니다 해야 한다”고 설교한 일이 있다. 찬양교회에서의 10년 목회를 코 앞에 두고 뒤돌아 보니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했었나 싶다.


에어컨도 없는 미국교회를 빌려서 주일 오후 2시에 예배 드리는 교회에 부임하며 나는 목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 두 가지를 생각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 됨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 교회는 교우들을 너무 많은 시간 교회에 붙들어 두면 안 된다는 것과 작은 교회는 어떻게든지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정말로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작은 교회가 큰 교회 하는 일을 다 따라 하거나 교우 간의 갈등과 다툼으로 그렇지 않아도 모자라는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시는 대로, 목사가 교회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새로 만드는 일보다 기존의 부서나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나는 부임한 지 한 달만에 한 달에 한 번 하던 금요심야기도회를 없앴다. 수요예배를 수요찬양기도회로 바꾸어 모임 하나를 줄일 수 있었다. 곧 이어 주일새벽기도회를 없앴다. 우리 교회는 당시 월요일을 제외한 6일을 새벽마다 기도회로 모였었다. 남선교회와 여선교회를 차례로 없앴고, 제직회를 없앴다.


부임한 지 1년 만에 수요예배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 해부터 사랑방이라는 셀모임에 집중하자면 모임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 재미가 있었던 수요찬양기도회를 없애는 것이 서운했지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로님들은 당회 시무를 3년 하고 1년 쉬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시 공천위원회의 공천을 받아 공동의회의 투표를 거쳐 3년직 장로에 취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회 시무는 65세까지만 하기로 하였다. 연령 차별의 시비를 피하기 위해 묵계로 그리 하기로 하였다. 교회를 위해 자기를 내어 놓은 장로님들의 열린 마음이 없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사이에 우리는, 부근에 있는 주립대학교 학생회관으로 옮겨 주일예배를 드렸고, 만 평의 부지를 구입하여 건축을 시작하였다. 찬양교회에서 처음 예배 드리던 날, 3분의 1에 가까운 유학생 가족을 포함하여 132명이 모였던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마치 한 바탕 꿈을 꾼 것 같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것도 아닌 예배순서를 그 중 하나만 고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해도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인데도 우리는 당시 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를 이른바 현대 감각의 찬양예배로 바꾸었다. 벌써 8년 반 전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하고도 교회가 무사했을까. 이러고도 담임목사의 안녕에 무슨 변이 없었을까. 참고로 말씀 드리면, 지난 10년 동안 공동의회를 하는 동안 단 한 사람도 거칠게 발언한 사람이 없었다. "저는 기운이 없어서 싸워 가면서는 못 합니다." 인터뷰할 때 청빙위원회에 한 말이다. 그 말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런 엄청난 변화의 와중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내내 평안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저항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물리법칙을 마음에 두고 살았지만,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이렇듯 변화무쌍한 목회를 할 수 있었다. 기운 없는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한량 없는 은혜라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이런 과격한 변화 때문에 피 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혁명적인 개선 뒤에는 그리스도의 피만 있었다.


* 이 글은 2009년 8월 이후 매주 한 편씩 여덟 번에 걸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 신문인 "기독공보"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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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어머니가 없었으면 이만한 세상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모계사회가 백 번 옳고 자연스럽다. 사랑하는 사람이 품어 다스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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