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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장로 사이

내가 찬양교회에서 목회하며 남녀선교회를 비롯해서 제직회, 수요예배 등등 많은 걸 없앴다고 했더니 당회도 없애지 그랬느냐고 어느 목사님이 농 섞인 질문을 했다. "무지하게 도움이 되는데 왜 없애요?"가 내가 건넨 답이었다. 뉴저지 목회 초기에 당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님들이 열심히 일하셔서 우리 교회가 잘 되면 밖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과연 허목사'라고 할 겁니다. 장로님들 덕좀 보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장로님들이 "덕 보세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지금 그 덕을 보고 있는 중이다. 장로교 목사로 목회하는 날수가 늘어갈수록 장로교회는 목사와 장로만 잘하면 교회가 편안한 것은 물론 얼마든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찬양교회에 부임한 지 6개월이 채 안 되었을 때의 생일 날, 집사님 한 분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식당에 따라 나섰다. 큰 방 문을 여는 순간 어두운 방에 불이 켜지며 환호하는 장로님과 안수집사님들 부부가 보였다. 연세 드신 장로님들까지 머리에 고깔 모자를 쓰고, 입으로 불고.. 나는 그 때 너무 고마워서 그 분들을 위해 죽기라도 하고 싶었다. 이전 교회에서는 젊은 목사가 생일상 받는 것이 거북해서 나는 그 때까지 교회에서 생일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 날 이후로 쉰 살 생일에 한 번 더 깜빡 속은 것 빼 놓고는 다시 생일상을 받은 일이 없다.


그리고 반 년 뒤, 어느 장로님을 따라 식당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시무장로님들 부부가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날인가요?" 기가 막혀 하며 물었더니, 내가 찬양교회에 부임한 지 일 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 다음 날이 꼭 일 년째 되는 날인데 그 때만 해도 수요예배가 있던 터라 하루를 앞당겨 모인 거라고 했다. 그 분들이 내게 장미꽃 열 두 송이를 주며 말했다. "목사님, 이것이 저희들 마음입니다." 시무장로님이 여섯 분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때도 그 분들을 위해 죽고 싶었다.


나는 목사와 장로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둘은 서로 지지하고 격려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일인데, 장로님 한 분이 걱정이 돼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 허목사님 예스맨이 돼가는 것 같은데, 지금 장로 노릇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그랬더니 장로님 한 분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목사님 말씀에 모두 예스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이냐?"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으며 그 분들을 위해 죽고 싶어도 더 죽을 목숨이 없었더랬다. 지금 허목사가 제 자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분은 이 글을 잘못 읽고 있는 거다. 못난 목사를 힘껏 밀어주면 교회에 좋은 일이 생기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목사도 유치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잘해 주고 잘 한다 말해 주면 더러 교회를 위해 죽고 싶은 생각이 나더라는 내 경험을 말하고 있는 중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사랑이 제자 됨의 표지이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 도드라진 인물들인 목사와 장로가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기독교는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 종교란 말인가. 새벽기도 때 눈을 감고 생각하면, 눈물나게 고마운 장로님들 얼굴이 줄줄이 지나가는 목사는 얼마나 행복한가. 장로님들이 눈 감고 하나님 앞에 앉았을 때 내 얼굴이 "눈물 나게"는 아니더라도 고마운 얼굴로 스칠 수 있을까. 사랑 받을 줄만 알았지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목사였던 것이 부끄럽다.


* 이 글은 2009년 8월 이후 여덟 번에 걸쳐 매주 한 번씩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 신문인 "기독공보"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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