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쯤에는 단순한 생활 (Simple life)이란 말이 유행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최소한의 삶 (minimal life)이란 말이 퍼지고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지니고 살면서 더 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쓰자는 건데,
에리히 프롬이 말한 존재지향적인 삶의 실천편이라 보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부자 청년에게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를 따르라고 하셨다.
놀랍게도 주요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대단히 신앙적인 젊은이에게
소유가 더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고 말씀하신 셈이다.
"그리고 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소유지향의 삶을 넘어설 때, 보다 더 풍성한 삶을 만나게 된다.
그 부자는 우리처럼 하나님을 모시고 소유지향의 삶을 살고자 했으므로
근심하며 주님을 떠나갔다.
유산의 분배를 놓고 다투는 형제에게 들려 주신 말씀도
이 방면의 논의에서는 가장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말이 될 것이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이제껏 더 많은 소유가 우리를 그만큼 더 행복하게 할거라는
잘못된 전제를 굳게 붙들고 살아왔다.
요즈음은 다행히 간소한 삶으로 넉넉해지자고 정반대의 삶을 실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소유지향의 사람들 틈에서 홀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이 여전히 겁이 난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말은 한결 같이 "적은 것이 결국 더 많은 것"이라는 데로 모아진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 했던 수도사들은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했고,
생각 있는 철학자들도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였던 에픽테투스는,
"자유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목표"라고 말하며 평생을 오두막에서 살았다.
명성이나 부, 권력에 대해서는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
세계를 제패하고 스승 디오게네스를 찾은 알렉산더가
"무엇을 좀 해 드리고 싶은데.."라고 거지처럼 사는 그에게 말을 건넸을 때
그저 "햇빛 가리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던가.
그러고 보면,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이해가 될 듯하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생각하라. 많을수록 좋은 것인가.
그리고 당장 불필요한 몇 가지를 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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