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홉스봄은 재즈를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이라 했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재즈가 악보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음악인 것은 인생이 온통 매인 데 투성이었던 한 많은 흑인들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재즈에는 마디마디 슬픔이 묻어 있기 십상이겠다. 나는 흑인들이 말끝마다 man을 달고 사는 것을 우리 말의 “이 사람아” 쯤으로 알았다. 노예 시절,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백인 주인들에게 boy라고 불리는 게 싫어서 자기들끼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man이라 불렀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재즈에는 man에서 느끼는 아픔이 느껴진다. man이 백인들을 낀 현실 세계와 거리를 둔 자기들만의 언어 공간이었듯이 재즈는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터를 두고 생겨나 현실이 범접하지 못하는 오롯이 그들만의 자유를 누리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억압 당한 이들이 음악으로 누리는 자유는 상당히 성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럿이 모여 각자의 음악을 연주하며 한데 어우러져 조화로운 음악이 되게 하는 것이 놀랍다. 재즈인들은 내 음악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음악의 자유와 어울려 아름다운 곡이 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연주를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누가 이것을 부자유라 하겠는가. 재즈의 비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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