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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대접

사람 수를 헤아릴 때에 흔히 숫자 뒤에 '명'을 붙인다. '어제 모임에 몇 명이나 참석했어요?' 이런 식이다. 이런 경우 이름이 그 사람을 대표한다고 여겨서 이름의 갯수는 곧 사람 숫자를 나타낸다. 한편으로, 한자어의 몇 '인'이나 우리 말의 몇 '사람'은 그 사람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겠다. 이런 식의 논의에서 아무래도 가장 슬픈 경우는, 가족 구성원의 숫자를 물을 때 식구가 몇이냐고 묻는 것일 듯 싶다. 먹는 입이 몇 개냐로 사람 숫자를 대신하는 것은, 자고 일어나면 땟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참으로 사는 것이 힘겨웠던 시절의 아픈 흔적이다.

속물 근성이겠는데, 목사들은 피차에 그 교회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가에 관심이 많다. 텍사스 소도시에서 목회하던 시절, 어느 모임에서 낯선 목사를 만나면 서로 통성명하고, 어디서 오셨어요, 그 도시에는 한국 사람이 얼마나 사나요, 대화는 흔히 그런 쪽으로 흘러가곤 했다. 코퍼스 크리스티에 사는 데요, 한국 커뮤니티는 아이들까지 합해서 2백 명쯤 됩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상대방은 교회는 몇 개나 되고요, 이렇게 다시 물었고, 장로교 하나, 침례교 하나에 천주교 공소가 하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하면 거개는 거기서 이야기가 일단락 되고는 하였다. 더 물어 볼 것도 없이 대충 상황을 알겠다는 뜻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를 일인데, 그 때 나는 왜 내가 사는 도시의 한인 인구를 묻는 말에 그냥 2백 명이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아이들까지 합해서 2백 명'이라고 했을까.

예수님 당시 군중의 숫자를 헤아릴 때 예외 없이 여자와 어린 아이는 통계에서 제외 되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던 기적적인 급식사건의 수혜자 5천 명도 모두가 남자들이었다. 남자들만 받아 먹은 것이 아니라, 여자와 어린 아이는 세지 않았다. 아마,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성령강림사건 이후 베드로의 한 번 설교로 3천 명이 세례를 받은 놀라운 일의 보고에서도 여자들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21세기로 돌아와서, 나는 언젠가 우연히 신기한 사실 하나를 관찰하게 되었다. 어떤 교회의 교세를 말할 때, 큰 교회는 약속이나 한 듯이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재적교인을 말하고, 그렇지 않아도 옹색한 작은 교회들은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장년들만을 헤아린 숫자를 말한다는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교인이 얼마나 돼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주일예배 장년 출석이 450명쯤 됩니다,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그른 쪽을 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교회에 몸 담고 있는 사람 전부를 말하건, 아니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을 말하건 그 숫자에 당연히 어린이가 포함되어야 옳은 것이다. 그것은 적이 나타나면 제 왜소함을 위장하기 위해 자기 몸을 한껏 펼쳐 보이는 동물 세계의 본능을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어린이도 사람이고, 성도이고, 엄연한 교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시험 삼아 내게 이렇게 물어 보라. 우리 교회 성도는 몇 명쯤 되나요? 그러면 나는 '어린이까지 합해서' 라는 토를 달지 않고 그냥 어린이까지 합한 숫자를 일러줄 것이다.

잘 돼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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